민화란 무엇인가?

민화란 무엇인가?

1. 민화란?

꾸밈없이 살아온 서민의 삶 속에서 태어난 민화(民畵)는 우리 겨레의 신화와 종교,우리의 정신이 깃들여 있는 문화 유산이다. 옛 사람들이 주거 공간을 꾸미고,회갑이나 혼례 등의 행사와 일년 중 중요한 때마다 쓰이던 그림이기에 우리가 지나온삶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민화는 대중의 일상생활에 연관된 실용적인 그림이다. 또한 민화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다. 옛 사람들이 사용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는 대로 느끼면 된다.

대체로 민화로 분류되는 작품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떠돌이 서민(庶民)화가가 서민들을 위해서 그린 각종 그림들이고다른 하나는 궁중에서 전통성(傳統性)과 인습성을(因習性) 강하게 띄고 제작된 작품들이다. 먼저 서민을 위해 서민화가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들은 작가가 알려져 있지 않고 연대가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 것이 공통적 특징이다. 그런데 궁중에서 사용되었고 그림공부를 한 화원(畵員)들에 의해서 그려졌지만, 정통회화보다는 민화로 분류되는 것들이 있어서 민화의 개념에 상당히 큰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그러한 예로는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이나 십장생도(十長生圖)를 비롯하여 궁중에서 사용되던 각종 그림들을 들 수가 있는데, 이들은 비록 궁중에서 사용되고 훈련된 화원들에 의해서 그려졌다고 하더라도 화가나 제작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고 전통성이나 인습성이 유난히 두드러지기 때문에 민화로 분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 사람들이 언제부터 민화를 그렸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아마 그림의 역사와 건축의 역사가 함께 시작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한국민족의 미의식과 조형감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종합예술로는 건축을 들 수가 있으며, 한국 건축에 있어서 그림은 민가, 궁궐, 사찰을 불문하고 집을 장식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집을 만드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였다.

민화는 주로 병풍으로 그려져 한옥의 가옥 구조를 보완하며 방안을 장식하는 도구로서, 혹은 집안의 대소사의 형식을 갖추는데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종이에만 그린 것이 아니라 신부가 타고 가는 꽃 가마를 비롯하여 도자기나 가구,문방구,돗자리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생활 곳곳에 스며 있었다. 전 시대에 걸쳐 제작 되었을 민화가 현재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민화를 그리 대단하게 여긴 그림이 아니었다는 점과, 더러워 지거나 낡으면 언제나 헌 것을 없애고 새것으로 대체했다는 점, 외적의 침입으로 손실된 점을 들 수 있다.

민화는 시대의 생활과 떼어놓고 생각 할 수 없다.

생활 그림인 민화 속에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상징성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러한 것을 통해 시대의 문화적 특성을 감지해 볼 수 있다. 민화 속에 가득한 해학과 풍자는 우리 민족 정서의 표현이었고, 민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기복 신앙과 벽사 신앙은 우리 민족이 간절히 염원하는 소망이었고, 민화를 천박하고 수준 낮은 그림이라 천시해도 좀처럼 그 맥이 끊어지지 않았던 것은 이렇게 민화 자신만이 지닌 고유함으로 우리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2. 민화의 특성

민화가 지니고 있는 특징을 간단히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 그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화야말로 우리 선조들이 지니고 있던 천진성이나 해학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표현방법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성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민화에서는 비단 단순성만이 아니라 주제나 내용, 표현방법 등 여러 측면에서 집합적으로 볼 때 대단히 다양한 양상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채색이 강하고 장식성이 두드러진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 조선시대의 회화는 유교사상이나 유교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수묵담채가 기본을 이루고 있었던 것에 비해 서민 대중사이에서 유행한 그림, 또는 궁중의 인습적 그림에서는 이처럼 강한 채색을 지니고 있어서 큰 대조를 보여준다.

민화 화가들은 많은 경우 전혀 색다르고 , 남과 다른 그림을 그리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일반 대중의 기호와 요구에 따라 수천의 화공들이 찾아낸 내용과 양식에 따라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몇 천년을 그려온 민화의 주제는 언제나 비슷했다 . 화조, 산수, 민속, 교화 모든 그림들이 이미 청동기 시대부터 끊임없이 내려왔던 것이다.

(1)  민화는 장식적 필요에 의해 그린 그림이다 .

토속신앙과 세계관이 반영된 그림이다 .

민화는 실용성, 상징성, 예술성을 모두 지니고있다.

(2) 민화에는 주술적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

민화 중에는 토착적인 종교와 결합된 풍습에 의해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 있다. 이를 세화라 하며 매우 널리 그려졌다. 그 대표적 예가 호랑이 그림이다.

(3) 민화는 집단적 감수성의 표현이다 .

민화는 곧 일반 서민들의 마음이라 할 수 있으며 공감과 공동소유에서 올 수 있는 쾌감을 바탕으로 그리고 감상하고 즐겼던 그림이다. 민화가 서민들의 생활과 함께 숨쉬면서 형성되었기에 실용성과 대중성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4) 민화는 '뽄그림'이다.

민화는 그 주제와 표현의 원류에 있어서 문인화나 도화서 화공들의 그림을 철저히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담아내는 내용이나 표현기법은 다르다. 이는 민화가 속칭 '뽄그림'이라고 하여 일정한 본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가운데 점차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특징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라 여겨짐.  

3. 민화의 종류

민화의 유형은 용도와 기법 , 재질, 주제 등에 의해 분류할 수 있다. 민화의 분류는 연구자에 따라 각각 그 방법과 내용이 다르며 이는 민화를 보는 관점에 따라 그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소재별로 나누는 일반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1) 화조도

꽃과 새가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화조도는 민화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이다 . 이는 우리 민족이 꽃과 새 그림을 가장 사랑했음을 반영하고있다. 자연 속에서 숨쉬는 온갖 꽃과 새들이 등장한다. 화조도를 유심히 보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만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 즉 동 (動)의 속성을 지닌 새와 극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靜)의 상징물로서의 꽃을 그려 모든 것이 대자연의 일부로서 새와 꽃이 단순히 새와 꽃이 아닌 광범위한 자연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화조화에서 보여지는 새와 꽃의 관계는 특정한 짝을 가지게 되는데 , 두견새는 배꽃과, 꾀꼬리는 버드나무와, 학은 소나무와,갈매기와 기러기는 갈대와, 봉황은 연꽃과 짝지우기를 좋아 하였다.

옆에서 보여지는 오리는 영원히 끊이지 않는 깊은 인연과 부부간의 애정을 상징한다 . 민화의 새는 반드시 암수 한쌍으로 혹은 새끼들을 거느린 모습으로 등장한다. 주로 부인방이나 신혼방, 혼례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꽃처럼 아름답게, 나무처럼 싱싱하게, 바위처럼 의젓하게, 그리고 그 속에서 쌍쌍이 정답게 살아가는 짐승처럼 부부가 영원히 사랑하기를 바라면서 그려 붙인 것이 화조 그림이다.  

(2) 초충도  

화조도가 꽃과 초목 ,새를 주요 소재로 한 것에 비해 초충도는 화초에 벌과 나비 같은 곤충을 주로 그린 그림이다. 특별히 과장한다거나 화려하게 그리지 않고 섬세하고 정묘한 세필로 그려져 조용하고 그윽한 정감을 주는 초충도는 주로 부인방에 장식되었다.

초충도를 소재별로 분류해서 나비를 그린 그림을 군접도 , 호접도라고 불리우는데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활 주변 가까이에 두고자 하는 심성을 반영한 것으로 꽃은 여자,나비는 남자에 비유하여 남녀간의 사랑놀음으로 표현하여 행복한 부부간의 화합과 기쁨을 염원하였다.

(3) 모란도

민화에는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이 등장한다 . 그 중에서 모란이 단일 꽃으로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데 거침없이 시원시원하며 화려한 모란은 꽃중의 꽃으로,예로부터 부귀를 상징했다. 모란은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수컷의 형상이라 하여 모牡,꽃색이 붉어 란丹이라 하였다. 모란꽃은 부귀의 상징으로서만이 아니라 꽃 스스로의 풍성한 자태로 말미암아 꽃 중의 왕으로 군림하였다 . 옛사람들은 모란꽃의 생장 상태를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는데, 꽃과 잎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피어나면 복된 미래가 다가오는 조짐으로 생각하였으며, 반면에 꽃이나 잎이 갑자기 시들거나 좋지않은 색깔로 변하면 가정에 가난이나 재앙이 닥쳐올 징조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이러한 이유로 모란꽃을 그릴 때는 풍성하고 화려하게 표현하려고 하였다.

대체적으로 모든 모란 그림을 궁모란도라 높여 부른다 .

궁중모란도는 대형 병풍의 형태가 많은데 대체로 도화서에서 그려진 것으로 하사품으로 내린 대형의 병풍들이 남아있다 .괴석 모란도는 모란도에 괴석이 그려지는 경우인데, 괴석을 중심으로 난초,소나무,대나무,꽃과 새 등을 곁들이기도 한다.

괴석은 만고불변의 장생(長生)물로 단조로운 모란도에 자유분방한 힘을 표출하고 있어 화면에 생기를 더해준다. 모란꽃은 여자를 괴석은 남성으로 비유하여 부부화합을 상징하기도 한다.

민화의 전반적인 구도가 그러하지만 모란도는 반드시 좌우대칭 구도를 보인다 .

(4) 연화도

연꽃은 모란만큼이나 민화에 많이 등장하는 꽃이다 . 모란을 꽃 중의 왕이라고 한다면 연꽃은 군자의 꽃이다.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자라면서도 잎새에는 더러운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만큼 깨끗한 연꽃을 세파에 물들지 않는 고결한 모습을 군자에 비유한 것이다.연꽃 그림이 불교 사상에만 결부되어 있는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와 상관 없이 즐겨 그려졌다 . 백로와 연꽃을 함께 그려 한번에 과거에 급제 하라는 뜻과 연밥이 촘촘히 박힌 연실을 그려 多男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잘 묘사하기 보다는 인간의 염원과 바람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데 주력한 민화는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자연을 초월하고 상상을 뛰어 넘는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 .

볼수록 시원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연화도는 원래 화조도의 일부분이었으나 여름 그림으로 독립되어 무더운 여름날 사랑방이나 대청마루를 장식하는 피서용 그림으로 사용되었다 . 연꽃 주위에 그려지는 새나 곤충, 물고기 같은 것은 화조도와 마찬가지로 꼭 쌍으로 그려져 음양합일사상을 강조한다.

(5) 책거리

문명의 발달은 교육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중국의 철학자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힘든 이사를 세번이나 하였고 조선의 서예가 한석봉의 어머니는 자녀가 어려운 학습과정을 완성 할 수 있도록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이렇듯 교육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단지 현대사회의 경쟁심리가 만들어 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하여 내려온 것이다. 조선은 학문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유교 국가였다. 사랑방에는 흔히 책과 책을 보관하는 책장, 탁자 등의 목재 문방가구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학습환경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의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에 좀더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좋은 뜻이 담긴 그림을 공부방에 걸어 두었는데 이는 부모의 세심한 배려를 보여줌과 동시에 장식의 효과까지 있어 한때 상당히 유행하였다.책거리 그림이란 바로 이러한 사랑방의 분위기를 표현한 것으로 책과 그 주변의 물건을 그린 민간 장식화, 즉 민화의 한 종류를 말한다.

명칭은 이 외에도 다양한데 책가도 , 서가도, 문방도, 책탁문방도 등으로 불려졌다. 원래 이러한 그림은 중국의 청(靑)나라 중엽부터 그려진 것이지만 중국과 우리나라의 책거리 그림은 형식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형태를 배치하는데 있어서 규칙을 따르기 보다는 주문한 사람의 취향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조선인의 미의식에 맞는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책거리 그림은 까치나 호랑이의 모습을 담은 민화와 같이 나쁜 일을 미리 막고 좋은 일을 기원하는 일종의 소원풀이 장식그림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주로 선비들의 사랑방이나 과거시험 준비에 한창인 자녀들의 공부방을 장식하였고 때때로 자녀의 성공적인 미래를 희망하는 부모들이 갓 태어난 아기방에 걸어 놓기도 하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생이 해야 할 공부의 양은 많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열은 높기 마련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늘날 지나친 부모의 관심에 반항하는 학생이 있듯이 당시에도 책거리 그림 속에 쓰러진 책상을 그려 넣는 등 예민한 학습기의 자녀들이 학문을 거부하는 작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는 것이다.

(6) 문자도

문자도는 삼강오륜 (三綱五倫)의 교훈적이고 길상적인 뜻을 지닌 문자를 통해 소망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에서 제작된 그림이다. 18세기 경부터 사대부가의 생활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19세기에 봉건사회가 이완됨에 따라 일반 서민들에게 파급된 것으로 보인다. 문자도를 대표하는 효제도(孝悌圖)는 유교의 도덕강령으로 선비의 덕목인 효孝.제悌,충忠,신信,예禮,의義,염廉,치恥 여덟 글자에 회화적 요소를 가미시킨 그림이다.

문자도는 기본적으로 문자를 다루고 있지만 , 각 글자에다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나 동식물들을 곁들여 그리고 있음으로 해서 회화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이 순수한 서예와 다른 점이다. 각 문자가 내포하고 있는 뜻이 그렇듯이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효(孝)자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잉어,죽순,부채,거문고,귤 혹은 인물로 이 소재들은 모두 효를 수행한 특정인물과 그와 관련된 기물, 혹은 상징적인 동식물들이다.

제(悌)자는 형제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으로 형제간에 서로 도우며 우애롭게 상아야 한다는 덕목. 주로 할미새와 산앵두나무가 등장한다. 할미새는 제비의 일종으로 꼬리는 길고 부리는 뾰족하며 등은 청회색이고 목 밑은 검다고 한다.

충(忠)자는 용,잉어,대나무,새우나 대합, 혹은 거북이가 등장한다.

잉어와 용은 벼슬의 등용문을 대합과 새우는 화합의 의미를 가진다.

신(信)은 파랑새 또는 흰기러기가 편지를 입에 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언약과 믿음을 상징한다.

예(禮)는 책을 지고 있는 거북이가 등장하는데 거북이가 삼덕(三德)을 상징하고 삼덕(三德)이 예의 기본이 되므로 자주 그려진다.

의(義)는 복숭아꽃과 새가 자주 그려진다.이는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가 의롭게 살기를 맹세하고 의형제를 맺었던 장소인 도원挑園을 상징하며 새는 외로움을 상징한다.

(7) 어해도

물고기와 조개류 및 게 등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 물고기의 종류에 구별 없이 각종 어족들이 노니는 모습은 마치 한가로운 수중 낙원과 같이 보이며 답답한 삶의 현실에서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는 생물 가운데 하나이므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고 ,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도둑을 경계한다고 믿어 다락문이나 벽장문 같은 곳에 어해도를 붙여 놓거나 뒤주에 붕어형의 자물쇠를 달아 놓기도 하였다.

또 물고기는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것은 동방의 바다에 산다는 전설적인 물고기인 비목어(比目漁)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고기는 눈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암컷과 수컷이 나란히 하여야 비로소 헤엄친다고 한다.

민화의 어해도에는 큰 잉어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뛰어 오르는 그림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중국 황하 상류 협곡에 등용登龍이라는 큰 폭포가 있었는데, 이른 봄철에 강물이 불어나서 역류하는 물결이 일 때면 늙은 잉어들이 용문에 모여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뛰어오르는데, 수많은 잉어 가운데 한 마리가 폭포를 뛰어 오르면 우뢰와 번개가 쳐서 잉어의 꼬리를 불태워 용이 된다고 한다.

이는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출세 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 과거 시험에 합격하라는 뜻이다.

(8) 호랑이

한국인들은 낙천적인 민족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러한 민족성이 없었더라면 많은 국난 속에서 꿋꿋이 견뎌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민족성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 민화다. 민화는 어느 계층에 한정되지 않은 대중적인 미술이므로 민족의 미의식과 정서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 옛날 서민들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 우선 모든 건축물들이 나무나 짚 등 불에 잘 타는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재가 무서운 적이었다.

또 한 번 돌았다 하면 한 마을을 휩쓸어 가는 전염병 , 그리고 모두가 무서워하는 귀신 등이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호랑이, 용, 사자 등의 무서운 형상을 그려 집 안팎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러한 동물들은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동물 그림들은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익살스럽고 정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 특히 호랑이는 당시 사람들의 생명을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민화에서의 표현은 전혀 달랐다. 사실 집안 곳곳에 붙여두고 매일 함께 생활해야 하는 그림이 무섭고 징그러운 형상을 하고 있다면 오히려 귀신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해학적인 표현들은 상상적인 존재들보다 실제로 볼 수 있었던 동물의 경우에 더 적극적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무서운 대상을 좀더 정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공포심을 극복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낙천적인 정서가 가미된 것으로 한국적인 미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y 약초마을 | 2009/04/21 14:47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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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강지영 at 2016/03/25 20:46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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