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24일
고사성어 - 2
고사성어 - 2
<출처:http://user.chollian.net/~cytchoi/>
一擧兩得(일거양득)/溫故知新(온고지신)/口蜜腹劍(구밀복검)/金迷紙醉(금미지취)/ 一刻三秋 (일각삼추)/掩耳盜鈴 (엄이도령)/與虎謀皮 (여호모피)/四 知 (사 지)/ 開卷有益(개권유익)/人面獸心(인면수심) |
一擧兩得(일거양득)
一(한 일) 擧(들 거) 兩(두 량) 得(얻을 득)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전국(戰國)시대, 진(秦)나라의 혜왕은 초(楚)나라의 사신 진진(陳軫)에게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공격하는 문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진진은 다음과 같은 고사로 대답을 대신하였습니다.
"변장자라는 사람이 범을 찌르려고 하자 여관의 아이가 만류하면서 '지금 두 범이 서로 소를 잡아 먹으려 하고 있는데,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서로 빼앗으려고 싸울 것입니다.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이니, 그 때 다친 놈을 찔러 죽이면 일거에 두마리의 범을 잡았다는 이름을 얻게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조금 후에 두 범이 싸워서 큰 놈이 다치고 작은 놈이 죽자, 변장자가 다친 놈을 찔러 죽이니 과연 한 번에 두 마리 범을 잡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거양득(一擧兩得)]은 [일석이조(一石二鳥)]와 같은 표현이며, 모두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뜻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溫(익힐 온) 故(옛 고) 知(알 지) 新(새 신)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는 이러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습니다.
[옛 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이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 속에서 발전의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옛 것과 새로운 것의 관계를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만 보아 버린다면, 사람들은 모두 단절된 상태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구세대와 신세대, 여기에 쉰 세대와 낀 세대, X세대와 Z세대, N세대라는 표현들은 모두 지혜롭지 못한 생각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선조들의 지혜가 들어있는 고전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반성과 발전의 실마리를 제시해 주는 가장 적절한 온고지신의 도구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배운 것을 익히고 또 익혀 새로운 것을 알아 낸다]라는 뜻입니다.
口蜜腹劍(구밀복검)
口(입 구) 蜜(꿀 밀) 腹(배 복) 劍(칼 검)

≪자치통감(資治通鑒)≫이라는 역사책의 당기(唐紀)편에는 이임보(李林甫)라는 사람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임보는 당 현종 때의 재상(宰相)으로서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다른 재주도 많아서,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 아첨하는 재주가 있어서, 권세 있는 인물들과 자주 접촉하고, 황제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많은 뇌물을 주어 황제의 언행을 항상 파악하여, 황제의 기분에 맞게 처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19년 동안이나 안전하게 재상의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또한 능력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중상하고 제거하려는 계책을 세웠습니다. 이임보는 황제가 병부시랑(兵部侍郞) 노현(盧絢)과 엄정지(嚴挺之) 등을 중용하려 하자 그들을 비방하여 그들의 승진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이임보는 겉으로는 매우 선량하게 좋은 말만을 하였으나, 속으로는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자, 세상 사람들은 마침내 그의 위선적인 면목을 알고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있지만 뱃속에는 칼이 들어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口蜜腹劍"이란 "겉으로는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품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金迷紙醉(금미지취)
金(쇠 금) 迷(미혹할 미) 紙(종이 지) 醉(취할 취)
송(宋)나라의 도곡(陶谷)이 편찬한 ≪청이록(淸異錄)≫이라는 책에는 당나라 말엽의 명의(名醫)인 맹부(孟斧)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그는 독창(毒瘡) 치료에 뛰어나서, 자주 황궁에 들어가 소종(昭宗) 황제의 병을 진료하였습니다. 차츰 황제를 진료하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자, 그는 황궁내의 실내 장식이나 기물의 배치 등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훗날 맹부는 사천(四川)지방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황궁을 모방하여 자신의 거처를 장식하였는데, 방안의 기물들을 모두 금종이로 포장하였습니다. 창문을 통하여 햇빛이 비칠 때면, 방안은 온통 금빛으로 가득하여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방문했다가 돌아가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방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만 금종이에 정신이 미혹되고 취해 버렸다네."
"金迷紙醉"는 "지극히 사치스런 생활"을 비유한 말입니다.
一刻三秋(일각삼추)
一(한 일) 刻(새길 각) 三(석 삼) 秋(가을 추)

≪시경(詩經)≫이라는 책의 왕풍(王風)편에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채갈(采葛)>이라는 시(詩)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대 칡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석달이나 된 듯하고, 그대 대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아홉달이나 된 듯하고, 그대 약쑥 캐러 가시어 하루동안 못 뵈어도 세 해나 된 듯하네."
옛날 중국에서는 일주야(一晝夜)를 일백각(一百刻)으로 나누었는데, 절기(節氣)나 주야(晝夜)에 따라 약간 달랐습니다. 예컨대, 동지에는 낮이 45각, 밤이 55각이었고, 하지에는 낮 65각, 밤 35각이었습니다. 춘분과 추분에는 낮이 55각반이었고, 밤은 44각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청(淸)대에 이르러서는 "시종(時鐘)"이라는 말로 시간을 나타내게 되었고, 현대 중국어에서는 15분을 "일각(一刻):이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一刻"이라는 말로써 매우 짧은 시간을 나타냈습니다.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라는 말은 이 시의 "일일삼추(一日三秋)"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모두 같은 뜻입니다. 이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 삼년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함"을 나타낸 말입니다.
掩耳盜鈴(엄이도령)
掩(가릴 엄) 耳(귀 이) 盜(훔칠 도) 鈴(방울 령)
≪여씨춘추(呂氏春秋)≫라는 책에는 귀를 막고 종을 훔치던 한 사나이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춘추시대 말엽, 진(晉)나라에서는 권력을 둘러싼 귀족들의 격렬한 싸움이 전개되었습니다. 마침내 대표적인 신흥 세력이었던 조간자(趙簡子)가 구세력의 핵심인 범길사(范吉射)의 가족을 멸하였는데, 그의 가족중 살아 남은 자들은 모두 진나라를 탈출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사나이가 이미 몰락해 버린 범길사의 집에 들어와서는 대문에 걸려있는 큰 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종을 훔쳐가려고 생각했지만 혼자 옮기기에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종을 조각내어 가져가려고 망치로 종을 내리친 순간, 꽝하는 큰 소리가 났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얼른 자기의 귀를 틀어 막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귀를 막으면 자기에게도 안들리고 다른 사람들도 듣지 못하리라 여겼던 것입니다.
"엄이도령(掩耳盜鈴 / 귀 막고 방울 도둑질 하기)"은 "掩耳盜鐘(엄이도종)"이라고도 하는데,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與虎謀皮(여호모피)
與(더불 여) 虎(범 호) 謀(꾀할 모) 皮(가죽 피)

태평어람(太平御覽)이라는 책의 권208에는 마치 이솝 우화(寓話)와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주(周)나라 때, 어떤 사나이가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는 따뜻한 가죽 이불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여우 가죽으로 이불을 만들면 가볍고 따뜻하다는 말을 듣고, 곧장 들판으로 나가 여우들과 이 가죽 문제를 상의하였습니다. 자신들의 가죽을 빌려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여우들은 깜짝 놀라서 모두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얼마 후, 그는 맛좋은 제물(祭物)을 만들어 귀신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그는 곧 양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하며, 그들에게 고기를 요구하였습니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양들은 모두 숲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습니다.
[여호모피(與狐謀皮)]라는 말은 후에 [여호모피(與虎謀皮)]로 바뀌었으며, [與虎謀皮]는 [호랑이에게 가죽을 요구하다]라는 뜻입니다. 여우나 호랑이에게 가죽을 벗어 내라하고, 양에게 고기를 썰어 내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與虎謀皮]란 [근본적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을 비유한 말입니다.
四知(사지)
四(넉 사) 知(알 지)

십팔사략(十八史略)이라는 책의 양진전(楊震傳)에는 후한(後漢) 때의 관리인 양진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평소 학문을 좋아하여 유학(儒學)에 정통했던 양진은 한 고을의 군수(郡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군의 하급 관청인 현(縣)의 현령(縣令)이 몰래 많은 금품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양진에게 건네 주려고 하며 [지금은 밤이 깊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양진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현령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그대로 물러갔습니다. 훗날 양진은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환관과 황제의 유모인 왕성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모함을 받게 되자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합니다.
[四知]란 [세상에는 비밀이 있을 수 없음]을 뜻합니다
開卷有益(개권유익)
開(열 개) 卷(책 권) 有(있을 유) 益(더할 익)

<승수연담록>이라는 책은 송(宋)나라 왕벽지(王闢之)가 남송(南宋) 고종(高宗) 이전의 잡다한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이 책의 권6에는 독서를 무척 좋아했던 송나라 태종(太宗)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태종은 이방(李昉) 등 14명의 학자들에게 사서(辭書)를 편찬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이들은 이전에 발간된 많은 책들을 널리 인용하는 등 7년 동안의 작업을 통하여 사서를 완성하였습니다. 55개부문으로 일천권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은 처음 서명을 태평편류(太平編類)라 하였으나 후에는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태종은 이 사서가 완성되자 몹시 기뻐하며 매일 이 책을 읽었습니다. 스스로 하루에 세 권씩 읽도록 정하여 놓고, 정사(政事)로 인해 못 읽는 경우에는 쉬는 날 이를 보충하였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신하들에게, 태종은 항상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으니, 짐은 이를 피로하다 여기지 않소."
[開卷有益(Reading gives advantages)]이란 [책을 읽으면 이로움이 있음]을 말합니다.
人面獸心(인면수심)
人(사람 인) 面(낯 면) 獸(짐승 수) 心(마음 심)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에는 한대(漢代) 흉노들의 활동 상황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흉노족은 서한(西漢) 시대 중국의 북방에 살았던 유목 민족이었습니다. 당시 한(漢)나라는 흉노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풍부하였으므로, 흉노족들은 자주 한나라를 침입하였습니다. 흉노족의 수십만 기마병(騎馬兵)은 해마다 한나라의 북방 국경을 넘어 들어와 농가를 기습하여 가축을 약탈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납치하였던 것입니다. 기원전 133년, 한 무제(武帝)는 흉노 정벌에 나서 수년 동안의 전투를 겪으며 그들의 침공을 막아냈습니다.
동한(東漢) 시대의 역사가인 반고(班固)는 자신의 역사서에서 흉노족의 잔악함을 묘사하여 [오랑캐들은 매우 탐욕스럽게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는데, 그들의 얼굴은 비록 사람같으나 성질은 흉악하여 마치 짐승같다(人面獸心)]라고 기록하였습니다.
[人面獸心]이란 본시 한족(漢族)들이 [흉노]를 멸시하여 쓰던 말이었으나, 후에는 성질이 잔인하고 흉악한 짐승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 by | 2009/01/24 16:20 | 사회문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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